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의 파산 사태로 직격탄을 맞았던 지역은행주들이 하루 만에 일제히 반등했다. '제2의 SVB'로 위기설이 돌았던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은 약 27% 치솟았다. 당국의 개입으로 시장 불안이 다소 진정되며 '안도의 랠리'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14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는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을 비롯한 지역은행주의 광범위한 반등이 두드러졌다. 전날 62% 폭락장을 기록했던 퍼스트리퍼블릭은 전장 대비 26.98% 상승해 거래를 마쳤다. 이어 장 마감 후 시간외거래에서도 10%대 오름세를 나타내고 있다. 팩웨스트 방코프는 33.85%, 웨스트얼라이언스방코프는 14.36%, 키코프는 6.94% 뛰어올랐다. 지역 기반의 중소 규모인 이들 은행은 SVB 사태가 확산할 경우 유동성 전염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며 전날 주가가 폭락한 곳들이다.

웰스파고(+4.58%), 시티(+5.95%) 등 대형 은행주들도 일제히 반등했다. 찰스 슈왑은 최고경영자(CEO)가 이날 회사의 주식을 매입하고 고객들의 예치금이 큰 규모로 계속 유입되고 있다고 밝히면서 9% 이상 뛰었다. S&P 지역은행 상장지수펀드(ETF)는 2% 이상 올랐다.글로벌 X의 존 마이어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지역은행들이 큰 상승세를 기록하며 (시장이) 안도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은행주 랠리에 힘입어 이날 뉴욕증시 3대지수도 일제히 1~2%대 상승마감했다.

이는 SVB와 시그니처은행의 파산으로 불거진 금융시장 불안이 당국의 개입 등으로 빠르게 진정된 데 따른 반등으로 해석된다. 월가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와는 다르다며 유동성 감염 가능성에도 선을 긋고 있다. 이날 개장 전 공개된 2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큰 이변없이 예상치에 부합했다는 점도 투자자들에게 안도감을 줬다. LPL파이낸셜의 아담 턴퀴스트 수석기술전략가는 "CPI에 큰 놀라움은 없다. 은행분야에서도 놀라움이 없다는 점에서 이는 안도의 랠리라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시장은 이를 환영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SVB 파산 여파에 대한 경계감도 지속되고 있다. 국제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는 이날 SVB 파산 여파를 반영해 미국 전체 은행 시스템 전체에 대한 등급 전망을 ‘안정적(stable)’에서 ‘부정적(negative)’으로 하향 조정했다. 무디스는 보고서를 통해 "SVB·실버게이트은행·시그니처은행에서 벌어진 예금인출 사태와 SVB·시그니처은행 파산에 따른 급격한 경영환경 악화를 반영해 이같이 조정했다"고 밝혔다. 이는 무디스가 전날 퍼스트리퍼블릭 등 7개 은행에 대한 신용등급을 하향하거나 재검토할 것이라고 경고한 데 뒤따른 조치다.

무디스는 SVB 파산 여파를 막기 위한 연방정부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미실현 증권 손실이 있는 다른 은행, 보호 대상이 아닌 무보험 예금자 등은 여전히 위험에 내몰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한 인플레이션을 낮추기 위해 연방준비제도(Fed)가 긴축을 장기화하는 과정에서 이들 은행의 상황이 한층 악화할 수 있다고 짚었다. 에버코어 ISI의 줄리안 에마누엘은 이날 뉴욕증시에서 지역 은행주가 반등한 점을 언급하며 "이 움직임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불확실하다"고 경고했다.

미 법무부와 증권거래위원회(SEC)는 SVB 파산과 관련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법무부와 SEC가 진행 중인 개별 조사는 아직 예비단계다. 이번 조사에는 SVB 모회사인 SVB 파이낸셜 경영진이 파산 전 지분을 매각하며 불거진 논란도 포함된다. 또한 경영진이 사전에 고객과 투자자들에게 금융 위험 가능성과 사업상 불확실성에 대해 정확하게 알렸는지도 당국의 조사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