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무역전쟁과 이에 따른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 경기둔화 우려가 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금은 지난해 1월 이후 약 1년반 만에 최장 상승세를 보이고 있고, 내년에는 온스(31.1g)당 1500달러를 뚫을 것이란 예상도 나오고 있다.

특히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가 무역전쟁 충격을 우려해 연내 최소 2차례 금리인하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달러 약세와 금 강세 전망을 강화하고 있다.

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금 선물가격은 8일 연속 상승, 올해 1월 이후 약 1년반 만에 최장 상승흐름을 기록했다. 경제둔화 조짐 속에 연준이 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투자자들의 전망이 높아진 것이 달러 하락과 금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금 선물가격은 온스당 1341.20달러까지 올랐다. 0.2% 더 오르면 1년2개월 만의 최고치 기록도 갈아치운다.

금 가격은 대개 미국 경제흐름과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 미국 경제전망이 불안해지면 금 수요가 늘고, 미국 금리인하 가능성이 높아져도 금 가격이 뛴다. 금리인하는 달러 가치를 끌어내리기 때문에 대표적 안전자산인 달러의 대체 투자수단인 금 가격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한다.

금 오름세는 지난달까지의 흐름과 정반대 움직임이다. 올 들어 투자자들은 미국 경제가 중국이나 유로존(유로 사용 19개국)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무역전쟁 충격을 잘 버텨낼 것이라는 확신으로 달러와 미국 국채를 사들였다.

그러나 이달 들어 발표된 미국 경제지표들이 줄줄이 미국 경기하강 조짐을 시사하면서 상황은 역전됐다. IHS마킷의 미국 제조업 5월 구매관리자지수(PMI)가 2009년 9월 이후 최저수준으로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고, 미국 공급관리협회(ISM)의 제조업지수 역시 2년반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투자자들 상당수가 이제는 미국의 나 홀로 경제성장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고, 연준이 무역전쟁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금리인하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 경기둔화, 금리인하 예상 속에 금이 달러를 제치고 안전자산 자리를 꿰찼다. 금 가격은 지난달 28일 이후 5.1% 뛰었다. 달러를 대체하는 안전자산인 일본 엔, 스위스 프랑 역시 금과 더불어 가치가 뛰고 있다.

시장은 이제 연준의 금리인하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CME그룹에 따르면 금리 선물시장에서는 연준이 올해 2차례 이상 금리를 내릴 가능성을 87%로 보고 있다. 지난달 말 리처드 클래리다 연준 부의장이 금리인하 가능성 포문을 연 뒤 제롬 파월 의장에 이르기까지 연준 고위 관계자들의 금리인하 시사 발언이 줄을 이으면서 무게추가 금리인하로 완전히 기울었다. 달러 강세는 연준만이 아닌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로부터도 힘을 받고 있다.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금리인하 가능성을 언급하고 나섰고, ECB는 최초 금리인상 시기를 아예 내년 말로 연기했다. 인도와 호주 중앙은행은 실제로 금리를 낮췄다.

상황이 급변하면서 금 가격 상승세가 탄력받을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에 따르면 지난 6일 현재 헤지펀드를 비롯한 투기적 투자자들의 주간단위 금 상승 베팅 전망은 지난해 4월 이후 1년여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금 상승 베팅이 전주에 비해 3배 넘게 급증했다.

금 가격 예상치도 덩달아 뛰고 있다.

JP모간체이스의 나타샤 카네바는 금 가격이 올 4·4분기 온스당 1405달러까지 오른 뒤 내년 말에는 1480달러를 찍을 것으로 전망했다.

ABN 암로의 조르주 볼은 금값이 내년에 1500달러까지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한편 금값이 뛰면서 뉴몬트 골드코프 등 금광업체 주식들도 급등세를 타고 있다. 다우지수가 8년 만에 가장 긴 6주 연속 하락세를 기록하는 등 뉴욕증시가 긴 하강세를 보인 것과 대조적으로 뉴몬트 주가는 지난 한달간 16% 폭등했다.